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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우 목사

에훗- 왼손의 일격



사사기서의 이야기들은 결코 설교로 쓰기에 쉽지 않은 내용들이 더러 있습니다. 오늘의 에훗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왜, 필요한 것은 빼고, 필요없이 보이는 내용들을 그렇게 자세히 성경은 기록할까, 의문을 품게 되는 부분이 많죠.

처음 사사로 갈렙의 영성을 닮은 옷니엘과 같은 훌륭한 인물에 대해 그다지 많은 내용을 할애 하지 않습니다.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적, 600을 무찌른 영웅 삼갈에 대해서는 한 줄이 다 입니다. 대단한 전쟁이였을 것이고 대단한 전투였을 장면들을 성공은 모두 다 베일로 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목적이 분명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 하고 성경을 봐야 성경의 구성과 스토리의 강조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멋있는 전투, 무용담, 이런 대단한 이야기들은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사람을 찬양하고, 사람을 높이는 것으로 미화되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철저히 사람의 업적이나 공로를 그 사람으로 돌려서 이야기하는 방식의 글을 배제합니다. 강조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강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을 찬양함 보다는 무언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 또한 영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에훗과 에글론이란 왕의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스토리에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발견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 보입니다.

하나님이 에훗이란 사람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의 백성을 모압에게서 구원할 자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에글론이란 왕을 죽이는지, 일련의 사건을 보여주지만, 그 내용을 훑어 볼때, 잔혹한 내용을 세세히 묘사하는 것 빼고는 어떤 영적인 insight이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오늘, 먼저 특이한 점은, 에훗의 배경입니다. 에훗은 베냐민 자손입니다. 그리고 그가 왼손잡이라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베냐민이란 이름의 원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오른손은 힘을 뜻합니다. 정의를 뜻합니다. 축복을 뜻합니다. 그런 좋은 의미로, 야곱이 라헬이 붙여준 슬픔의 아들이란 이름을 개명한 이름이죠. 그렇지만, 에훗을 왼손잡이라고 가장 먼저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어떤 깊은 뜻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이나 예나 왼손잡이는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핸티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왼손잡이라는 말을 풀이하면, 사실 오른손이 제한된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딱 두번 나오는 말인데, 두번 다 베냐민 자손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에훗이 오른손을 못쓰는 불구였다, 또는 일부러 왼손을 훈련시키려 오른손을 안쓰는 사람이었다, 또한 양손잡이었다 까지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에훗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한 것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하나 눈여겨 볼것은, 에훗의 칼입니다. 에훗은 특이하게도 길지도 않고 그다지 짧지도 않은 칼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 간직해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에훗의 칼이 길었다면 몸안에 숨기기 어려웠을 터이고, 충분히 길지 않았다면, 에글론의 지방낀 배를 충분히 뚫고 타격을 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에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공물을 바치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부터였는지 알 지 못하나, 그가 에글론의 처소안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관계자와 밀통이 있었을 확률이 있고, 여러번 그곳을 왕래하여 위치와 상황, 신하들의 정황들을 꿰둟고 있었던 빈틈이 없었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번째, 그는 공물을 바치고 돌아가던중, 혼자 에글론을 상대하러 돌아 갔다라는 것입니다. 한손과, 한 칼을 가지고, 적진에 혼자 다시 돌아 갔다라는 것으로 보아, 그의 각오와, 담력은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길갈의 돌 뜨는 곳을 지나, 이스라엘의 안전지대까지 간후, 거기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전쟁을 주도합니다. 그날 모압 용사 일만을 쳐부수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 땅에 80년이 태평하였다고 합니다. 사사시절 80년이 태평한 것은 가장 긴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런 포인트들 속에서 눈여겨 바야할 것은 먼저, 에후는 혼자서, 다시 돌아왔다 라는 것입니다. 공물을 받치러 거드는 사람들과 같이 갔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을 계획을 어쩜 하고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오히려 그들은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더 큰 대가를 치루게 될 것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좌절하며 갔을 수도, 아님, 자신들의 실패를 상황탓으로 돌리며 서로 위로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훗은 다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럿이서 하지 못한다면, 그는 혼자서 해 볼 만한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길갈은 의미있는 곳입니다. 분명 여호수아 시절 처음으로 할례를 행한 곳이고, 돌 뜨는 곳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방인들에게도 종교, 신앙적인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에훗은 어떤 영감을 받은게 아니였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앞으로 해야 할 계획들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일 수 있습니다. 만약, 혼자서 처음 부터 이 모든 일을 비밀리 집행 할려 했다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다시 돌아가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혼자서 감행한 그의 담력과 지략은 높이 살만한 것입니다.

에훗이 그 칼을 만들고 그 몸안에 숨겼을 때, 그는 반드시 에글론을 단칼에 찌르려는 일격을 수도 없이 생각하고 연습했을 것입니다. 다음 기회로 넘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날 그는 감행 해야 했던 것입니다. 에훗의 왼손이 얼마나 빨랐고, 얼마나 강력했고, 정확했음을 우리는 또한 주목해야 합니다. 자신의 핸디캡을 적이 알지 못하는 장점으로 바꾸어 대업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는 그의 왼손의 일격을 매스터 하기에 남다른 노력과 시간을 쏟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에글론이란 존재가 우리 삶에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안에, 내가 사육하고 있는 탐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내 탐욕을 채우기 위해, 계속 같다 바친 나의 마음과 시간과 정성이 결국, 내 삶 전체를 지배하는 폭군이 되어 갔던 것을 이스라엘에게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것을 당신에게 보이겠소, 하며 에글론을 일으켜 세웠던 그 말이, 사실,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동일한 단어로 의미될 수 있습니다.

나의 우상을 단번에 무너뜨릴 단 한가지 개혁의 도구는 양 날 선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보입니다.

사역자들이 탐욕의 우상에 노예되어있는 현 시대 교회를 다시 구하기 위해서, 연마해야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찌를 수 있는 일격의 힘입니다. 너무 장엄해서도, 너무 짧아서도 되지 않는 바로, 내가 자유자재로, 훈련하고 쓸 수 있는 칼,

수도 없이 훈련했을 그 일격의 말씀,, 이것이 아니고는 거대한 우상을 쓰러뜨릴 다른 방법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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